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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열두 발자국/정재승 (2)

초심독자 2018. 9. 13. 19:20

열두발자국/정재승 

두번째 북리뷰 - second half


열두발자국의 각 챕터에는 챕터마다 어울리는 명언이 소개되어있다. 그 중에 하나는 존 홀트의 명언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알 수 있다. - 존 홀트(John Holt)

인간의 지적 능력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격도 마찬가지 아닐까. 많은 경험,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독서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고 낯선 장소와 뜻밖의 상황에 맞닥들이는 것이 인간을 창의적으로 만든다. 아니, 단지 창의적으로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많은 경험은 세상에 내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덜 두려워하게 만든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follower로 디자인되어 있는 것에 가깝다고 한다). 독서도, 영화도.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대화도.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자 살면 다른 사람을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안 부딪히고 사는 것이 사실 가능하기도 하다. 혼자 쓰는 공간에 살고,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점점 보편화되고있고, 배달도 혼술도 가능하다. 취미생활도 어플로 취미모임에서 만나서 하면 되고, 운동도 악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점점 다른 사람을 심도있게 이해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에 치였고- 내 한몸 살기도 바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혼자 있는 편을 택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해본적 없는 일을 나이들어 시도하는 것은 어렵다. 시도한다고 해도 타인을 이해한다는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 네이버에 검색을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거나 동의를 얻고싶을 때는 단톡방에 물어본다. 익명성을 가지고 물어보고 싶을때는 인터넷 카페에 질문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외롭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서점에는 외로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책이 그렇게 많은걸지도 모르겠다.

흔한 잔소리같지만,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의미있는 충돌'을 경험하라는 표현을 썼다. 자기가 알고있는 세계, 익숙한 것에 머물러서는 창의적일 수 없다는 것일것이다. 창의성과 사교성, 이해심과 배려 모두 충돌에서 경험한다. 그렇다면 소위 '좋은'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뜻일까? 총체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부드럽게 혹은 격하게 세상과 부딪힐수있도록 운동도 하고, 독서도 대화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들어온 정보들을 뇌가 처리할 수 있도록 잠도 충분히 자고.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자기의 일자리가 인공지능때문에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면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연구자들이 당장 내일 놀라운 수준의 인공지능을 발표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그 기술이 산업에 적용되고, 실제적으로 내 사무실 내 자리까지 오기까지는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릴 것 같다. 나는 내가 금융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여기가 최첨단 프로그램으로 돌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웃음). 실상은 1990년대 손으로 장부를 기록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최첨단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예측하지 못한 실수가 벌어지면 아직까지는 사람이 커버해야 하더라. 그리고 적어도 인공지능이 현업에 도입될 때는 갑자기 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본인이 인공지능 도입 테스트를 하고 보완점을 정리해서 개발팀에 넘기고, 개발팀이 업데이트를 적용해주면 또 테스트하고.. 이런 프로세스를 수년에 걸쳐서 하면서 차츰차츰 도입되겠지. 그때쯤에는 나도 현업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당장 인공지능이 내 책상을 없앨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인공지능 때문에 우리는 기억력이 감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때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방법은 사람이 고민하는게 맞는 것 같다. 인공지능에게 '이런 자료가 필요하니 줘' 라고 주문할 수 있고, 예전같으면 그걸 하나씩 찾아봤겠고- 요즘은 엑셀에서 매크로를 돌리겠지만, 앞으로는 '줘' 라고 한번만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제일 좋은 방법을 찾아서 해결해준다니 그건 정말 좋겠다. 그러니- 사람이 하는 역할이 바뀌는 것이지 사람이 할 일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세대에서는 인공지능과 암호화폐가 우리 삶을 뒤덮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않다. 주식의 역사도 보면 최초의 주식회사로 알려진 동인도회사가 1602년 설립되었고, 튤립시장, 미국의 주식시장이 1900년대 초 활성화되어 지금 우리가 아는 대형 투자은행들이 생겨나서 지금의 거래소와 결제 시스템이 갖춰지기까지 100년이 흘렀다. 암호화폐는 지금 튤립시장 같은 곳 아닐까. 사기꾼이 판치고 엉성하기 짝이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년, 200년이 흐르고 나면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의 사람들이 중앙은행 같은걸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어떻게 돈이나 정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걸까? 하면서.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일은 여전히 많다. 예를 들어 판단, 이해, 감정.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 데이터에 없는 정보가 새로 들어왔을때 기존의 데이터를 짜집기해서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 눈치를 보는 것. 그런 것들. 

다만, 교육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령기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이, 혹은 자녀계획을 가진 신혼부부들도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까 하는 고민으로 대화를 나눌거라고 믿는다. 지금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 내 자녀를 보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아이가 세상을 살만한 곳이라는 것,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것, 세상을 사는 방법은 원웨이가 아니라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 그걸 충분히 배웠으면 좋겠다. 한국 교육에서는 세상에 한가지 길밖에 없는 것처럼 가르쳐서 싫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방법이 없는 것처럼 말해서 싫다. 그래서 실패를 한번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서 싫다. 수능도 공무원시험도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거기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내 가치관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는 꼼꼼함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상황과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살고싶다.


창의력이나, 인공지능이나, 스마트기기들이나 모두 기기는 기기다. 결국 사람이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편리한 세상에서 내가 집중할 것은 유연한 생각, 새로운 관점, 사랑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