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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영화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2016)

초심독자 2021. 2. 8. 00:20



언제였던가. 교보문고를 지나다닐 때, 영화 포스터로 표지를 장식한 소설 미 비포 유가 한참동안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살짝 곱슬머리가 있는 남자. 저 빨간 드레스가 내가 보기에는 다소 어바웃타임의 주인공과 닮은 모습이라 이 소설도 영화도 정이 가지 않았다.

해리포터를 보고싶어서 왓차플레이를 구독했다가 12월부터 1월에 걸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모두 정주행하고 더이상 볼것이 없어서 정기결제를 해지했다. 그리고 1월 30일. 마지막날이니 뭐라도 하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추천작을 뒤적거리다가 무심코 누르게 된 영화가 미비포유였다.

정말이지 기대를 하지 않고 봤기 때문인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곧 빠져들었다. 목가적인 풍경, 고성에 사는 주인공. 알록달록한 주인공의 구두와 복실복실한 카디건이 꽤나 사랑스러운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말랑말랑하게 녹은 마음으로 보게됐다.

두 사람이 주인공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에 정당성을 가득 부여한다. 여자친구의 생일에 조깅용 타이즈를 입고 28분이나 늦게 나타나는 남자친구와, 예의바른 말투로 악의적인 말들도 웃어 넘길 줄 아는 다른 남자. 아름다운 들판에서 소풍을 하고, 고성의 성벽 위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을 나누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야기하고, 심지어 남자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희망을 걸고있기에 호의적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싶었지만 두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마주하는 피날레 직전에 여자는 구남친과 헤어진다. 난 이 헤어짐을, 그 사람이 잘못해서 혹은 의견이 달라서, 싸워서..이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자신의 고객이자 호감을 품은 남자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아빠, 엄마, 조카와 여동생을 부양하고 마을 카페에서 일하고 구직사무소를 다니며 이렇게 살다가 예쁜 케이크와 옷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삶-물론 그것도 좋은 삶이다-이 자신의 미래이고, 다른 미래는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새로운 이 사람은 자신에게 다른 미래가 있다 말한다. 여자는 아직 젊고, 새로운 출발을 떠날 용기도 있고, 최악의 상황(employeed as a suicide watch)에서도 그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나가려고 하는 의지도 있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이 사람을. 가족을 위해, 남자친구를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기에 그녀는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남자는 새로운 세상과 미래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접어두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싶지 않았다. 본인의 평생 낫지 않을 장애 때문에 그녀의 발목을 잡고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인생이라니, 남녀를 떠나 누구도 그렇게 하고싶지 않을거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알고있다- 최고의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녀의 발목을 내가 잡지 않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적어도 찾기 위해 시도했더라면 어땠을까. 단지 죽음만이 최선이었을까?

윌의 죽음은 단지 사랑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그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그의 건강한 신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다. 그가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미래를 바라보았다면 어땠을까. 그는 다행히 부유한 집의 외아들이고, 충분한 의료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녀와 함께 파리에 갔다면, 그녀와 함께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더라면.. 물론 쉽지 않았을거다. 장애를 가진 삶은 그의 말대로 파리에서 택시의 승차거부를, 불편한 보도블록 때문에 길도 마음껏 다닐 수 없고, 가고싶은 식당이 아니라 들어갈 수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하는 삶일테니까.

그의 죽음이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을테니, 고통만이 지속되는 삶이라면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사실 윌의 선택보다, 나에게 더 다가왔던건 그의 부모님과 루의 마음이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의 절망을 이해해주었고,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루는.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다니. 슬픔과 절망, 배신감, 너를 만난것에 대한 후회, 실망.. 이런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안락사라는 것은 살해의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다고만 생각했지, 안락사를 선택한 이의 가족이 슬퍼할것이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생은 아름답지만 참 무섭다. 살아있는 사람은 슬프든, 절망했든, 삶의 시련을 만났든, 배신을 당했든 계속 살아가야한다.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는 것 같다. 루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솔직하고, 할 수 있는 일 찾아 직진하는 힘.